나이, 몸 상태, 멘탈 상태, 가족력 등 이런저런 요인들을 다 합쳐보니 '당뇨병이란 문은 열었고 아직 발은 들이밀기 직전'이더군요.
원래는 알아서 식단하고 운동을 해서 해결해 보려고 했는데, 인간의 몸은 체중이 줄어드는 걸 굉장히 경계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.
작년부터 인생사에 없을 만큼 바닥으로 처박는 일들이 몇 개 연달아 생기다 보니 멘탈도 간신히 현상 유지만 가능했습니다.
그러다 보니 약을 이제는 써야만 할 상황이 되더군요. 어지간한 의지력으로 퉁치기에는 건강이 더 급했습니다.
앞에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쓴 건 이 치료제가 절대로 미용을 위한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에요. 돈이 남아돌아서 쓰는 것도 아니고 살고 싶어서 쓰는 거니 돈지랄을 자랑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.
(그냥 그런 오해의 여지를 제가 조금이라도 없애고 싶어서 쓴 거니 무시하셔도 됩니다)
작년부터 병원에서 제안을 받았지만 거부하고 고민하던 비만치료제를 며칠 전에야 처방받아서 써 보는 중입니다.
최근 유명한 그 배에 주사 놓는 그겁니다.
약을 써 보니, 밥을 먹어서 올라오는 포만감의 역치를 낮추면서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고(소위 말하는 슈거하이를 막아줍니다) 또 지속시간을 길게 해 줘서 식사량과 빈도를 조절하는 듯합니다. 슈거하이가 안 오니 식사 수의 만족감이나 행복감도 줄어드는데 오히려 이게 스트레스 상황일 때에도 행복감이 그닥 없어서 군것질이나 폭식을 많이 줄여줘요. 너무 장점만 있는 것 같지만 단점이라면 낮은~중간 수준의 미식거림이 계속 동반된다는 정도.
이걸 합치면 뭐랄까...음식을 먹고 싶은 맛에 먹고 싶은 양만큼 먹을 수는 있지만 당신이 먹은 모든 걸 뱃속에서 '식용유에 버무린 푹 삶은 양배추'로 바꿔버려서, 배가 금방 차고 잘 꺼지지도 않고 하루종일 기분나쁘게 배부른? 느낌입니다(좀 익숙해지면 미식거리는 느낌은 줄어드는 듯).
덕분에 운동과 식단을 하는 데에 꽤 도움을 받고 있는데 일단 배고픔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이 없어서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다 정도?
근데 여기서 아니꼬운 건 자꾸 비만치료제를 '살 빼는 약'처럼 생각하거나 '먹은 걸 없었던 일로 해 주는'약으로 착각해서 처방받는 것 같은?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보이는 점...
그런 거 검색하면 안 좋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검색해보면,
약 맞고 밥 평소처럼 뚝딱했는데 약 제대로 듣는 거 맞냐
외국 나가서 맛있는거 먹으면 살 찔까봐 처방받았고 덕분에 살 안 찌고 돌아왔다(특히 이거에 많이 긁힘)
그리고 여름철 직전 시즌에는 약국에 재고가 없으니 약국에 주기적으로 전화해서 재고 체크를 해야 한다...
건강이 위험해서 약을 쓴 분들도 곳곳에 보이긴 했습니다만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슬림해진 나를 위한 갈망들이 너무 아니꼽게 보였어요.
약 먹고도 밥 든든하게 다 먹어놓고...식사량 줄였을 때의 괴로움을 줄이는 약인데 왜 그걸 다 먹고 살 빠지길 바라는거지?
아무리 '부작용 아주 작음'같은 치트 능력치가 있어도 처방 기준이 좀더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.
놀러가서 맛있는건 먹고싶지만 살 찌기는 싫은 사람이 자유롭게 쓸 약은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.